이승만의 간첩조작으로 사법살인 당한 조봉암 선생 59주기 추모식조봉암 선생은 간첩 누명을 쓰고 양승태 같은 사법농단범의 재판거래 사형판결로 사법살인 당해
7월 31일은 진보당 당수였던 죽산 조봉암 선생 서거 59주기다. 이날 오전 11시 서울 중량구 망우리 공원묘지 묘소에서는 제59주기 추모식이 거행 되었다.
조봉암 선생은 1959년 7월 31일 오전 11시에 이승만에 의해 간첩으로 몰려 사법살인을 당했기에, 매년 11시에 맞춰 추모제를 지낸다.
이날 추모식에는 박남춘 인천시장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 조봉암 선생 비서를 지낸 소설가 김제영 선생 등 예년보다 많은 정치인과 시민들이 참석했다.
조봉암 선생 기념사업회 측은 내년이 선생 서거 60주기이면서 동시에 탄생 120주년이라면서 건국훈장 추서 등 명예회복과 인천지역 기념사업이 재추진되야 한다고 밝혔다.
곽정근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장은 "내년에는 반드시 선생님께 건국훈장이 추서되고 정치의 광장이었던 인천에 가장 유서 깊은 거리에 선생님의 동상이 건립되리라 믿고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남춘 시장은 추도사에서 "죽산 선생은 인천의 자부심이라며 선생의 가르침을 따르는 시장이 될 것이다"며 "인천의 자부심이자 대한민국의 위대한 지도자인 죽산 선생을 기리는 것이 더욱 가치있는 일이 되도록 인천시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드린다."고 밝혔다.
조봉암 선생은 현 인천 강화군 지역에서 태어나 3·1 운동에 참여하여 1년간 복역하고 1925년 4월 조선청년동맹, 조선공산당 등을 결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32년 상해에서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7년간 복역했고, 출옥 후 다시 검거되었으나 해방이 되어 석방되었다.
해방 이후 강경한 노선을 고수하던 조선공산당의 박헌영과 갈등을 겪고 반공주의로 전향하여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참여하고, 초대 농림부장관과 2대 국회 부의장을 맡아 토지개혁과 민생개혁을 주도해 민생 경제와 산업화의 초석을 닦았다.
제 2·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두 번 모두 이승만에 이은 2위로 낙선하였고, 이후 책임 있는 혁신정치, 수탈 없는 계획경제, 민주적 평화통일의 강령으로 진보당을 창당하여 활동하였다. 조봉암 선생이 꿈꾸고 주창했던 진보적 가치는 한반도 평화와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였다.
영구 집권을 꿈꾸던 이승만 정권은, 제 3대 대선에서 신익희 추모표로 표가 갈리고 부정 선거가 이뤄졌음에도 무소속으로 무려 30%를 득표한 조봉암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그들은 진보당을 등록 취소라는 방법으로 강제 해산했다.
또한 조봉암을 제거하기 위해 1심 재판에서 간첩 혐의를 무죄로 선고했던 유병진 판사에게 정치 테러를 비롯한 온갖 수단을 통해 사법부를 압박했고, 결국 조봉암 선생은 간첩 누명을 쓰고 양승태 같은 사법농단범의 재판거래 사형판결로 끝내 사법살인을 당하고 말았다.
이후 통일사회당 등으로 진보 정당의 역사가 이어지기는 하나, 이 사건으로 인해 제도 정치 세력이 극우 반공주의 외의 다른 이념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1990년대말 민주노동당의 전신인 국민승리21이 생기기 전까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대법원은 2011년 재심을 통해 선생의 주요 혐의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여 선생에게 씌워진 간첩 누명은 벗게 되었으나,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추모식 부터 대통령 화환이 놓이게 되었으며 올해도 문재인 대통령의 화환이 묘소 앞에 자리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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